no. 04

APR 2025 • Essay

Connect Without Depth

깊이를 포기했을 때 더 편해지는 우리
person holding string lights

프롤로그

"우리 좀 더 깊은 이야기 나눠볼까?"

이 말이 당신을 편하게 만드나요, 아니면 긴장하게 만드나요? 요즘 사람들은 '깊은 관계'를 추구합니다. 피상적인 대화를 넘어서, 진심을 나누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영혼까지 교감하는 관계. 그것이 진짜 관계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계에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매일 연락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취향을 공유하고, 과거를 이야기하고, 미래를 약속합니다. 관계가 깊어지지 않으면 불안해지고, 상대가 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 서운해집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 모든 관계가 깊어야 할까요? 덤덤 스튜디오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적당한 거리'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깊이라는 환상

"진짜 친구는 서로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좋은 관계는 깊은 대화에서 나온다." "겉핥기 관계는 의미가 없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믿으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 때문에 관계에서 계속 무언가를 요구하고, 기대하고, 실망합니다.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놨는데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상처받습니다. 연인에게 내 마음을 설명했는데 이해하지 못하면 섭섭합니다. "왜 나를 몰라줄까?" "우리 사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하고 의심합니다. 하지만 깊이는 관계의 필수 조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깊이에 대한 강박이 관계를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편합니다.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야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덤덤하게 관계 맺기

덤덤 스튜디오는 관계에서 다른 방식을 제안합니다.

분석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 함께 있기.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기

우리는 관계에서 '이해'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상대가 나를 완벽히 이해해주기를 바라고, 내가 상대를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계속 질문하고, 설명하고, 확인합니다. 이런 질문들은 친밀함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대를 피곤하게 만듭니다. 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고, 모든 행동을 정당화해야 하니까요.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상대의 선택이 내 기준으로는 이상해 보여도, 상대의 취향이 내 취향과 완전히 달라도,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럴 수도 있지." 이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좋은 친구라면 자주 만나야 할까요? 매일 연락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주 만나는 것'을 관계의 척도로 삼습니다. 자주 보지 않으면 우정이 식는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정말 좋은 관계는 시간의 빈도와 상관없지 않나요? 1년 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 몇 달간 연락 없어도 서운하지 않은 사이. 만났을 때는 편하고, 헤어져도 부담 없는 관계. 이것이 진짜 편한 관계입니다. 오히려 자주 보지 않아도 유지되는 관계가 더 단단합니다.

기대를 내려놓기

우리는 관계에 수많은 기대를 걸어둡니다. 그리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하고, 화내고, 관계를 재평가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기대는 당신이 일방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상대는 그 기대를 알지도 못하고, 동의한 적도 없습니다. 기대를 내려놓으세요. 상대가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라지 마세요. 대신 상대가 해주는 것에 감사하고, 하지 않는 것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세요. 생일을 기억하면 고맙고, 기억 못 하면 별일 아닙니다. 연락 오면 반갑고, 안 오면 바쁜가 보다 합니다. 기대가 사라지면 실망도 사라집니다. 그리고 관계는 훨씬 가벼워집니다.

거리를 인정하기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우리는 결국 다른 사람입니다.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감정을 느끼고, 다른 삶을 삽니다. 아무리 오래 함께해도, 상대의 내면을 100% 알 수는 없습니다. 이 거리를 없애려고 애쓰지 마세요. 오히려 이 거리가 서로를 존중하게 만듭니다. 너무 가까우면 답답합니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숨 쉴 공간이 생깁니다.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 필요할 때만 가까워지는 관계. 이것이 오래가는 관계의 비결입니다.

피상적인 것의 가치

"피상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들립니다. 깊지 않은, 진심이 없는, 의미 없는 관계처럼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같이 밥 먹고, 가벼운 농담 나누고, 시시콜콜한 이야기 하는 관계. 무겁지 않고, 부담 없고, 그냥 편한 관계. 무거운 고민을 나눌 필요도 없고, 진지한 대화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오늘 뭐 먹을까?" "날씨 좋네." "이거 재밌더라." 이런 가벼운 말들로 충분합니다.

가볍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가벼워서 오래갑니다.

에필로그

모든 관계가 깊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서로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도, 매일 만나야 하는 것도,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덤덤하게, 관계에서도 생각을 덜어내세요. 분석하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깊이를 강요하지 마세요.

적당한 거리에서, 가볍게 연결되어 있는 것. 그것이 가장 오래가는 관계입니다.